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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후기

2020년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리프—〈카이로스〉에서 왼쪽에 나오는 리프—를 떠올렸다. 모든 작가가 종종 겪는 순간. 그 신비한 과정의 연속으로써 나는 리프를 곧장 루퍼에 넣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해체·분석 없이 바로 다른 리프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것 또한 루퍼에 넣었다. 두 리프가 맞물리면서 연금술적 융합이 일어났다. 그 둘은 내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서로 대조를 이루었고, 이 대조가 비선형적인 리듬과 화성을 형성했다. 그건 새로운 choral music처럼 들렸다. 미래에서 발견된 제의ritual같았다. 무엇을 위한 제의인지는 몰랐다. 본래 음악이 먼저 오고 말은 나중에 오니까.
비선형적 루프 중첩, 이것을 레이어링이라고 부르자. 나는 〈카이로스〉를 스케치한 이후로도 꽤 많은 레이어링을 했다. 그리하여 김연덕 시인의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한 〈재와 사랑의 미래〉에까지 다다랐는데, 그즈음부터 사연이란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layer들이 개별로든 집합으로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말은 뭔진 몰라도 굉장히 슬픈 것이어서 내가 그걸 듣거나 연주할 때마다 울게 만들었다. 처음 〈재와 사랑의 미래〉를 공연했을 때는 눈물을 참느라 집중이 안 돼서 곤욕을 치를 정도였다. 감정의 격양 때문에 음악을 건드리기가 힘든 경우는 처음이었다. 레이어들을 아무리 많이 듣고 연주해도 마음이 무뎌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게 날 트럭처럼 치도록 놔뒀다. 그리고 〈지나감〉을 만들었다. 〈지나감〉을 들은 사람들이 울었다.
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지금 여길 떠나는 일. 그 좆같은 일을 위해 내가 부릴 수 있는 모든 혼을 동원하여 《이별의 찬트》를.
〈카이로스〉의 시간과 〈크로노스〉의 시간을 거쳐 〈지나감〉을 통과해 〈재와 사랑의 미래〉에 당도하는 것. 미학적으로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음악에 스토리를 붙인다면 이런 식일 것이다. 이 네 곡을 마무리할 때까지도 나는 앨범 제목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건 대자연 앞이나 깊은 사색 속에서가 아니라 게임에서 힌트를 얻었다. ‘로스트 아크’의 어떤 플레이어 닉네임이 바로 이별의찬트다. 내 캐릭터 앞을 지나가는 그를 보자마자 그 닉네임을 앨범 제목으로 정했다. 동시성 현상은 가벼운 세계에서마저도 유효하다. 삶은 ‘패턴’이다.
아주 나중에 추가된 짧은 곡 〈Ascension〉은 일종의 hidden track 역할을 한다. 인터넷 관용어를 빌려서 표현한다면 ‘성불’song이다.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앞 트랙들에서 그러모은 심상을 소천시켜버린다.
이러저러 해서 이별의 찬트 Farewell Chant 는 이제 세상에 나왔다. 예술 향유자들의 주된 상상과는 달리, 고된 일을 끝내고 난 다음의 후련함 같은 건 없다. 영혼의 정점은 빛나는 모습이 아니다. 더는 내 안에서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이별에 대한 포스트